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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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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 피트, 크레이그 셰퍼 주연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입니다. 우선 영화가 미국의 영문학 교수이자 작가인 노먼 멕클레인의 자전적 소설 "A River Runs Through It and Other Stories"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작가 본인이 체험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몬타나의 훌륭한 자연환경이 단연 돋보이는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기계의 발길이 아직 시골을 더럽히기 전, 청교도적인 사고방식이 아직 만연해 있을 때의 사람들의 모습을 현실적이면서도 회고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한층 더 정취를 끌어올리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영화의 훌륭한 묘사 중 단연 백미라 할 만한 것은 아무래도 플라이 낚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 이 영화가 북미에서 개봉하였을 때 플라이 낚시를 새롭게 취미로 삼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죠. 깨끗하고 정갈한 자연을 배경으로 낚시꾼의 모습을 담는 씬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낚싯줄을 던지는 장면에서 디테일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도 낚시꾼의 긴장감과 희락을 극대화하여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속도감이 빠른 쇼트편집과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는 카메라워킹을 활용하였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낚싯줄이 스냅에 따라 휘감아 날아가는 장면을 슬로우모션으로 담아낸 씬에서 저는 낚시의 ㄴ자도 모르는데도 마치 옆에서 같은 쾌감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영화에서 플라이 낚시 장면이 낭만적이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 장면을 그저 심미적인 감정을 느끼며 소모해 버리는 것도 아깝습니다. 이야기의 주연은 노먼 멕클레인(크레이그 셰퍼 扮)과 폴 멕클레인(브레드 피트 扮) 형제입니다. 두 사람은 목사님이면서 낚시를 정말 좋아하는 아버지로부터 종교적인 교육 뿐 아니라 플라이 낚시에 대한 훈련과 교육을 받게 되죠. 아이들이 아버지에게서 전수받은 것은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기술적인 방법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낚시를 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해본 적은 없지만, 혹자는 낚시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인내와 기다림, 참을성과 폭발적인 집중력, 자제심은 좋은 낚시꾼의 자질일 뿐만 아니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형제는 아버지에게서 단순히 낚시대를 휘두르는 방법을 배운 것이 아닌, 인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관점을 받아들여 세상을 보는 창을 연 것입니다. 노먼이 제시(에밀리 로이드 扮)에게 청혼하고 오는 길에 폴에게 이 소식을 알리자 폴이 노먼에게 '강에 그렇게 물고기가 많은데?' 라고 하고 노먼은 '그녀밖에 없다'라는 식으로 응수합니다. 제시를 선택하지 않는 다른 경우의 수를 물고기에 비유한 것은 비유 자체로 탁월하기도 하지만, 낚시를 곧 인생에 비유한 이야기의 줄기와 맞물리는 수사법이라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서 주연이 노먼 멕클레인과 폴 멕클레인이라고 하였는데, 전지적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만큼 이야기의 주인공에는 노먼 멕클레인이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갈 때, 노먼이 폴에게 향하고 있는 시선을 중심으로 이해하면 더 자연스러워요. 성인이 된 두 사람은 이전처럼 아버지와 함께 고향에서 낚시를 즐기기 어려워지죠. 노먼은 동부의 다트머스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폴은 낚시에 미련이 있어 고향 근처의 학교로 갔다가 졸업 후 기자로 일하게 됩니다. 대학 졸업 후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안은 채 고향으로 돌아오는 노먼으로 인해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정말로 오래간만에 만난 노먼과 폴은 곧바로 낚시를 하러 가는데, 노먼은 폴의 플라이 낚시가 이전보다 더욱 늘어 예술의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여기서 적나라하게 연출된 노먼의 열등감이 재미있습니다. 낚시가 워낙 오랜만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노먼은 동생 폴이 상류로 올라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제대로 물고기를 낚게 되는 것입니다. 조용히 상류로 올라가 지켜본 폴의 모습은 예술가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강 가운데에서 휘두르는 낚싯대와 반짝이는 물줄기는 관객의 눈을 끌어당깁니다. 노먼도 눈부신 폴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듯 합니다.
노먼이 폴에게 느낀 것은 열등감일 수도 있지만 동경의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노먼은 다트머스 대학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적성을 알아가며 뜻깊은 시간을 보내었겠으나, 마음 깊은 곳에는 고향 몬타나로 회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고향을 떠나지 않고 정착해 있었던 동생이 부러웠던 것입니다. 동생 폴은 한편으로 노먼과 달리 규칙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하는 욕망이 더 강하고 비교적 더 반골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성격이기도 하죠. 어느 것이나 노먼에게 부족한 성격이고, 그로 인해 동생에게 느끼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먼 타지로 떠나기 전에 보트를 훔쳤던 일로 두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먹다툼까지 하며 싸웠던 것이 노먼의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와 겪게 되는 일련의 경험에서 노먼은 열등감에서 벗어나 폴의 삶 또한 이해하게 됩니다. 아니, 이해라기보다는 수용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두 형제 사이에서 처음에는 폴에게 에너지가 더 많았다면 이것이 차츰 노먼에게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노먼은 폴이 고향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줄만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그의 반골 기질 때문에 겪는 마찰이 있으며 그가 도박 빚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영화는 서서히 조명하고 있죠. 반면 노먼은 제시와의 연인 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에너지를 얻게 되며 폴과의 경험은 노먼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줍니다. 에너지의 이동이 정점에 이르는 것은 노먼이 시카고 대학으로부터의 교수 임용장을 받게 되는 시퀸스일 것입니다.
폴은 형 노먼이 드디어 교수가 되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는 없으나, 세심한 연출은 폴에게 마냥 축하의 마음만 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브래드 피트의 미묘하게 웃는 표정연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다른 세 사람은 소리를 내어 웃고 있는데 폴만은 크게 소리내어 웃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다음에 아버지와 두 아들은 다시 강으로 낚시를 하러 갑니다. 이때 폴은 마치 자신의 예술가적인 가치를 증명이라도 해내려는 듯 큰 물고기를 무리해서 잡아냅니다. 아버지와 노먼은 순간 사고가 일어날 까 긴장했지만, 무사히 커다란 물고기와의 사투에서 이긴 폴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이렇게 갈등이 풀어지는 듯 보이는데, 반전으로 동생 폴은 길거리 싸움에 휘말려 사망하게 되고 맙니다.
만약 노먼이 폴에게 느꼈던 열등감만을 생각했다면 매우 당혹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폴 또한 노먼을 부러워하고 동시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자신은 낚시에 있어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넘어 거의 예술의 경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먼이 할 수 있고 폴이 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노먼은 본인의 비전과 야망을 좇아 간 타지에서 꿈을 발견하지만, 폴은 결국 몬타나를 떠나지 못하니까요. 비록 폴이 몬타나 안에서 화려하게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마음 속에서는 공허함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어쩌면 노먼은 물고기를 척척 잡는 폴이 부러웠을지도 모르겠으나, 폴은 물고기 한마리에 풍요로움을 느끼는 노먼이 부러웠던 것일지도요.
그런 폴의 예술성이 마지막의 낚시 시퀸스를 통해 극대화되었기 때문에, 폴의 죽음으로 그것을 더욱 승화시킨 것으로 풀이됩니다. 아버지는 그런 폴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폴에 대해서 '훌륭한 낚시꾼 그 이상이었고, 아름다웠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말미의 독백에 보면, "Eventually, all things emerge into one, and a river runs through it" 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인생의 가치관이 차이가 있었고 그로 인해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 두 사람의 가치관이 서로를 더 완전하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강줄기가 모여 커다란 강을 만드는 것 처럼 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로 모여 흘러가는 강물 가운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나이 든 노먼은 자기 자신을 강물에 '홀렸다(haunted)'라고 표현합니다. 나 자신을 강물에 동일시하고 있는 정말 멋진 표현이지요. 인생을 낚시에 비유한 끝에 이제는 대자연에 흐르는 물줄기에 비유하다니, 시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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