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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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영화 쿵푸팬더 4편입니다. 시리즈의 첫번째 편이 2008년에 개봉했으니 이 시리즈의 수명도 정말 깁니다. 이전에 있었던 세편의 영화를 3부작으로 완결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법 한데, 이는 개봉 소식이 한동안 없어서일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3편으로 이야기를 잘 매듭지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픽사의 토이스토리와도 비교됩니다. 잠시 언급하자면 토이스토리는 3편에서 이야기의 구심점이었던 앤디가 훌쩍 성장해 성인이 되었고, 시리즈와 함께 성장한 관객들에게 여운을 주며 3부작의 서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래서 4편이 개봉했을 당시 팬들은 기대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서사의 매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전작을 넘을 수 없을 영화라는 것을 알기에 걱정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쿵푸팬더에 대한 제 생각도 동일합니다. 지난 세 편에서 주인공 포의 각성, 성장 그리고 해소를 다루면서 서사를 잘 마무리하였기에, 속편이 다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성공적인 시리즈 영화들을 보면 3부작으로 완결내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가 그렇고,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그렇습니다. 3편으로 잘 마무리 된 듯 하다 4편을 제작해 혹평을 들었던 매트릭스 시리즈도 있고요. 이런 경우들을 볼 때 시리즈의 4편이 나온다는 소식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앞선 영화들이 호평일색이었을 때 더욱 그렇죠. 쿵푸팬더 4를 보고 난 소감은, 하나는 앞서 걱정했던 부분들이 대체로 사실로 드러났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는 것이에요.
영화의 러닝타임이 90분 남짓 되는데, 이 영화의 서사 진행이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고 급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기분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전 시리즈에서 나왔던 등장인물을 대거 교체하였는데, 새로운 인물로 급하게 이끌어 가야 할 서사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랜 시리즈의 팬들은 시리즈의 캐릭터에도 애착을 가지는 법인데, 무적의 5인방이라는 인기 있는 캐릭터들을 뺀 것 부터 이미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셈이었어요. 과거 쿵푸팬더 1편에서 성룡의 연기를 기대했다가 특별출연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부족한 대사량에 실망한 사람들이 비슷한 기분이었을까요. 완전히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인 젠을 끌어들이는 방식도 다소 아쉽습니다. 우선 포가 용의 전사를 뽑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장면 바로 다음에 제이드 궁전에 찾아온 젠은 그녀가 용의 전사로 선택되는 결말이 쉽게 예상되는 다소 작위적인 설정의 캐릭터였습니다. 초반부에서 젠의 캐릭터성은 상당히 평면적으로 다뤄졌는데, 출신도 의도도 모르는 장난꾸러기의 캐릭터가 주인공을 이유 없이 도와주는 위치에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후반에 젠이 사실은 카멜레온 밑에서 일했고 포를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반전을 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지만, 사실 관객이 스토리 구상의 장치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서사 구성이 빈약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고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킨 것 자체가 문제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미 완결된 원작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 만들 때 기존의 캐릭터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도 나름대로 리스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그러한데, 트랜스포머 원작의 팬이 있기에 아무리 시리즈가 진행 되더라도 주축이 되는 주인공 캐릭터를 아예 퇴장시키는 것은 일단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선택입니다. 그래서 거의 매 영화에서 옵티머스 프라임, 범블비의 모습을 새롭게 볼 수 있죠. 그러나 계획에 없었던 속편이 계속 나오면서 새로운 위기, 새로운 국면이 거듭해서 등장하는데 이를 계속 기존 캐릭터를 활용해야 하니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내가 알던 캐릭터가 성격이 달라지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거듭 나오며 새롭게 등장하는 비클의 모습이, 단순히 완구를 팔아먹으려 하는 것 같아서 거북한 것만은 아닌 거에요. 시리즈 초반의 외형을 그리워 하는 것은, 외형 뿐 아니라 예전의 캐릭터 성격이 그리운 것일 테고요. 그래서 쿵푸팬더 4에서 등장인물을 전체적으로 교체하고 새롭게 이야기를 낸 것은 차라리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이전 영화들을 아끼는 입장에서 말이죠. 즉 쿵푸팬더 4의 플롯이 구조적으로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담고 싶었던 내용에 비해 러닝타임이 너무 짧았고, 그래서 서사를 충분히 납득시키고 매력을 전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교한 플롯을 일부 포기한 대신, 그 빈 자리에는 전편보다 개그를 더 집어넣으려고 한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내면의 소리가 튀어나와서 천사와 악마처럼 조언을 한다는 아이디어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전편의 설정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기 때문에 좋았으며, 1차원적인 상황개그나 몸개그도 폼이 그대로랄까요? 별로 어색하지도 않았고 재미있었습니다. 한과 그 패밀리들의 말장난을 두 번이나 반복한 건 좀 아쉬웠지만요. 그리고 액션에서도 크게 부족한 점은 없었다고 봅니다. 주인공 포와 그 일행이 쓰는 화려한 기술도 이 시리즈를 보는 재미였는데, 짧은 러닝타임을 고려하면 액션씬에도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였다고 생각해요.
한편 판타지와 액션 장르의 시리즈물이 길게 늘어지면 창작자 입장에서 고민이 많이 되는 것이 인물간의 상하관계일텐데요, 소위 파워밸런스라고 하죠. 이 영화는 파워밸런스 문제에서도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게 설정을 잘 끌고 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면서도 기존 서사에 있었던 설정을 그대로 가져 와야 하는 것이므로, 시리즈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죠. 영화 초반에서 시푸가 기를 사용하여 꽃을 피워 내거나, 포가 전작에서 배운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장면 등은 전작의 기억을 되살리는 재미있는 체험이 됩니다. 영화 후반에는 전작에 나왔던 빌런들이 짧게 등장하나 새로운 빌런 캐릭터인 카멜레온에게 제압당하고, 포는 그 카멜레온에 대항하여 자신 있게 승리를 따냅니다. 쿵푸팬더 시리즈는 각 영화의 빌런들도 매력적이었다보니 빌런이 너무 짧게 소비되는 듯 하여 아깝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최종 결전이 약간은 긴장감이 없었던 느낌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런 문제는 사실 러닝타임의 문제였지, 오히려 전작의 빌런이 필요 이상으로 길게 등장하거나, 포가 전작으로부터의 성장 없이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것도 못 미더웠을 거에요. 실망했다면 아마도 그것은 전작의 빌런이 진 것 자체가 아쉽다기보다는 카멜레온이라는 갑자기 등장한 빌런이 얼마나 강한지 납득시킬 수 있는 빌드업과 연출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생각하고요. 그 부분은 아쉽습니다만, 완결된 3부작 시리즈에서 새롭게 제작한 속편의 태생적 단점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쿵푸팬더는 시작부터 가족 관람을 타겟으로 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악역에 대한 서사가 매우 훌륭했기 때문에 시리즈의 팬이 된 사람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1편에서 보여준 부성의 아이러니, 2편에서 보여준 자기충족적 예언의 서사는 악역에게 굉장히 입체적인 면모를 부여하였고,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러한 악역의 입체성이 주인공의 서사를 망치지 않고 오히려 더 매끄럽게 다듬어 주었다는 점이에요. 영화 뮬란(2020)에서 그랬던 것처럼 악역에게 미숙한 서사를 부여하면 주인공이 하는 모든 행동거지가 영화 안에서 헛돌게 되는데, 쿵푸팬더 시리즈에서는 악역의 서사가 포의 성장을 마치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좋았어요. 이번 4편에서는 아쉽게도 그런 입체적인 악역의 연출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적절한 개그와 적당한 볼거리, 그리웠던 캐릭터들을 짧게나마 다시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핍진성을 잘 지킨 플롯 덕분에 전작들에서 느꼈던 재미가 사라지지도 않았다는 점 덕분인 것 같습니다.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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