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화리뷰] 빅 쇼트(The Big Short, 2015)

무비루비 2023. 11. 4. 17:49

 

 

 

Short는 우리말로 공매도를 뜻합니다. 공매도는 내 수중에 팔 것이 없음에도 일단 물건을 파는 것이고, 차후에 거래대금을 청구받는 거래방식의 일종입니다. 거래 시점과 청구 시점의 시간적 간격에 착안하여, 만약 거래 기간 안에 거래하는 재화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거래자는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거래 대상의 가치가 올라가면 더 비싼 값을 치뤄야 하기에 거래자는 손해를 봅니다. 공매도는 사실은 보험과 비슷한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만든 금융상품입니다. 어떤 투자상품의 미래 가치에 대하여 확실하지 않을 때, 하락에 대한 손실을 메꿀 수 있는 공매도에 자금을 분산시켜 놓으면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공매도, 선물거래는 불확정성이 강하면서도 투자 성공 시 기대수익이 막대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대개가 투기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공매도를 걸면서도 확신에 차있을 수 있다면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확신에 가득 차있다는 뜻이겠죠. 이 영화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발 금융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화이면서 블랙코미디의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꺾어지리라 생각한 등장인물들의 공매도가 서사의 중심축이 되어 이끌어갑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우리말로 그대로 말하면 부실 주택담보대출입니다. 부동산 가치의 지속적인 상승 속에서 은행은 대출의 리스크를 계속 낮게 평가했고, 미래에도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 아래 거의 무조건적으로 대출을 허용하고 상품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CDO(Collateralized Dept Obligations; 부채담보부증권)을 발행하여 판매합니다. 이는 즉 은행이 고객에게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해 준 거래내역의 차용증을 조금씩 자르고 여러개를 묶어서 하나의 차용증처럼 만들어서 판 것인데, 생각해 보면 CDO는 어떤 가치를 투입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은행이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어 낸 파생상품이므로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돈을 만들어낸 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만들어낸 돈이 순탄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꺾일 때 순식간에 휴지가 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공매도와 CDO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 4의 벽을 깨면서 관객에게 설명해주는 씬이 짧게 있다는 것인데, 각각 마고 로비, 그리고 셀레나 고메즈와 리처드 탈러가 짧게 등장합니다. 리처드 탈러는 저서 <넛지>,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행동경제학의 연구의 선두주자 중 하나로 2017년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등장인물의 대사로 처리하려면 무척이나 지루한 내용이면서도 다큐멘터리성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갔어야 했던 개념을 이렇게 유창하게 설명한 부분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나타났을 때 전문가들의 화두는 당연히 이 현상의 이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영원히 올라가기만 할 것이라 생각했던 게 어리석어 보이고, 이상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금융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리가 나쁘거나, 특별히 어리석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금융전문인들은 머리가 비상한 편에 속하지 않습니까? 영화는 서브프라임이 터지게 된 과정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보여주면서 관객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스스로 이유를 생각해보게끔 유도합니다.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 扮)는 CDO를 구성하는 부채 항목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부실성을 처음으로 의심하는 역할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모기지론에 대한 CDS(Credit Default Swap; 신용부도스왑)의 개설을 요구하여 처음으로 공매도에 진입하게 됩니다. 마이클 버리는 실적이 좋았던 유능한  펀드 매니져입니다. 금융의 전문가들이 그의 부하고 동료이고 상사입니다. 마이클 버리가 하늘을 치솟는 부동산 상승세에 전면으로 저항하는 판단을 한 것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책임감 없고 실력도 없는 투자자라고 생각합니다. CDO의 불완정성과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열변한 마이클 버리의 설명을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까요? 그렇진 않았을 것입니다.

첫번째는 집단적 사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의 일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당시 부동산 시장은 더 오랫동안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소견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시장에 대한 치명적인 결함을 확인한다 하더라도 이를 애써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료가 잘못됬겠지, 내지는 내가 잘 못 봤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다수의 의견에 무게를 싣는 것은 상당한 이점이 있기도 합니다. 나의 독자적인 판단보다 다수의 판단이 더 믿을만 할 뿐 아니라, 설령 틀렸다 하더라도 여전히 다수에 묻어가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수결이 내 결정을 자꾸 압도하도록 방치하면 다수의 의견이 마치 자기 생각인 양 스스로 인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의 문제는 새로운 시각에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 있는 사람을 보고도 그것이 중요한 발견이라는 것도 미처 모른다는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이전에서도 부동산 시장의 지속적인 우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는 일관적인 생각이 형성되었고 그러한 생각이 각자에게 내재화되었기 때문에 마이클 버리의 생각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로, 관성적인 사고방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부동산 시장의 지속적인 우상향에서 그 끝을 의심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계속 선전하는 부동산 시세가 시장에 대한 불안감을 점차 깎아내렸을 것이고, 결국 그는 부동산의 오름세를 한치의 의심 없이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현상에 대한 판단조차도 바뀌려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처음 부동산 시장이 들뜰 때는, 오래지 않아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인 판단과 달리 계속 시장이 과열되어가면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그 상황이 오래 지속될수록 시장의 과열이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로 시장이 불안정하다고 생각을 바꾸려면 마찬가지로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일은 주위에서도 많이 보입니다. 유명한 회사의 주식은 오랜 기간 올라서 누구나 그 주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돌 때 가장 거래량이 활발합니다. 이 때 주식을 사는 사람들이 상승세는 곧 끝나고 하락세가 올 것이라는 걱정을 안 해본 것이 아니죠. 오히려 그런 걱정을 너무 많이 한 끝에 뇌가 피곤해져서, 그냥 판단력을 대중의 선택에 맡겨버린 경우일 것입니다. 수 년 단위로 반짝 유행하는 음식들도 예시입니다. 처음에는 누가 그런 걸 먹겠어 싶다가도 나중에 가서는 마치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 처럼 소비합니다. 뇌의 판단 패턴이 충분한 시간을 거쳐서 새롭게 굳어진 것입니다.

 

부동산 거품이 수면 위로 나타나고 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扮)이 계속 CDS의 프리미엄을 높게 책정하는 신용평가회사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크는 CDS의 매입자 포지션이기 때문에 CDS의 프리미엄을 계속 지불하면서 그 대가로 CDO의 위험 부담을 매도자에게 전가하는 구조입니다. 상품 자산이 파산 위험에 처하면 매입자는 매도자로부터 손실보전금액을 받게 됩니다. 부동산 부실이 언론에 공개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가고 있는데, 파산 처리를 하지 않고 계속 프리미엄을 받으니 마크는 속이 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막을 알고 보니 CDO의 신용평가등급이 실제로는 매우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AA, AAA등급을 주고 있었던 것임을 발견합니다. 신용평가사도 민간영리기업이었기에 경쟁사에게 우위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금융기업의 생각에 맞춰줘야 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근시안적인 판단이었던 것이지요. 이 부분에서는 분업화와 도덕성이 서로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분업은 권한을 분할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악행을 방지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장치 없이 신용평가사를 금융회사와 분리만 해 둔 조치는 금융 위기를 부른 원인이 되었습니다. 평가를 거짓으로 매기면서 동시에 그 행동이 국제 금융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인지하고 있지는 않았을 터입니다. 업무가 극도로 분업화되면 서로가 각자의 근시안적인 시각만 가진 체 서서히 다가오는 모랄 헤저드의 위협을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설령 그것이 가장 총명한 사람들이 모인 월 스트리트라도 말입니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심지어는 그들의 삶을 포기하게 만든 매우 비극적이었던 금융 위기였습니다. 이 영화는 기회를 잡아 큰 돈을 번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다루고 있는 사건이 비극이라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동시에 그 비극의 원인을 눈앞에 제시하기보다는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면서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게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대와 욕심의 바벨탑이 무너졌을 때 가장 많이 아픈 사람들은 탑의 가장 아래에 있던 서민들이었고, 이러한 일이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큰 돈을 버는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들뜨지 않았고, 비극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냉철하면서도 정중했던 점이 이 영화의 훌륭한 부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