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퍼펙트 블루(パーフェクトブルー,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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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퍼펙트 블루는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블랙스완에 영향을 준 애니메이션입니다. 감상하고 나니 서사 뿐 아니라 연출에서 정말 큰 영감을 줬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퍼펙트 블루는 정신질환이 서사의 축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것이 손에 잡히지 않고 흘러내리는 모래알 같은 이야기를 한 곳으로 단단히 묶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주인공 마미는 환각과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조현병 환자의 특징적인 증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현병을 영화에 사용한다는 것은 관객을 깜짝 놀래킬 수 있는 정말 절묘한 장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환각이란 쉽게 말하자면 매우 고성능의 VR기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VR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을 외부에서 바라본 적이 있나요? 체험자가 그 안에서 손에 땀을 쥐는 모험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 한복판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외부에서의 관찰자는 그런 것을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관심있는 것이 있다면 우스꽝스럽게 허공을 가르는 체험자의 팔다리에 더 관심이 가겠죠. VR을 끼고 파닥거리는 사람을 보고 있자면 제법 웃깁니다. 환각이란 것도 비슷한 원리로 작동합니다. 정상적인 뇌는 흔히 오감이라고 부르는 온몸으로부터 오는 전기신호를 적절히 해석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세상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환각은 뇌에서 제대로 신호 해석을 못하거나, 또는 자의적으로 만들어 낸 전기신호를 뇌가 스스로 납득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현상을 뇌는 실제라고 착각을 하게 되죠. 망상은 이런 식의 거짓된 정보들을 뇌가 필사적으로 해석해낸 결과에 해당합니다. 상식에 의존해서는 들리지 않아야 할 게 들리고 보이지 않아야 할 게 보이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으니, 그럴 듯 한 설명을 뇌가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죠.
VR을 끼고 있는 사람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은 그 웃긴 행동이 일시적으로만 지속될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체험자가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 육안으로 보이므로 그것만 벗기면 체험자는 관찰자인 나와 다시 같은 세상에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반면 환각을 호소하는 환자를 마주하면 인간은 원초적인 공포감을 느낍니다. 이는 상대방이 느끼는 세상과 내가 느끼는 세상이 비록 완전히 별개의 것이면서도, 그 둘의 수직적 위상이 비슷하다고 느끼기 떄문입니다. 환각이 만들어낸 세상이 꼭 내 세상을 부숴 버릴 것만 같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보통 사람도 세상을 인지할 때 오감으로부터 비롯된 전기신호로 외부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사람은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할 수가 없고 오감이 번역해 온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죠. 색맹인 사람은 색맹이 아닌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 스스로 색맹임을 깨우칠 수 없습니다. 장미꽃이 붉고 개나리는 노랗다라고 하는 것은 원추세포에서 번역한 자료를 받아들이는 것일 뿐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평소에는 거의 망각하고 있으며 알고 있을 필요도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환각이라는 개념을 만나면 이를 불현듯 떠올리게 되죠. 그렇다면 내가 느낄 수 있는,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실제가 아닐 수도 있는가?
이런 공포감을 극대화하려면, 관객이 환각 상황을 더 사실적으로 받아들일수록 유리합니다. 그러나 정상인이 환각과 망상을 겪고 있는 환자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지식으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조현병 환자들은 그들만의 완전한 세상을 통째로 만들어 내 그 곳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보통 사람이라면 그 세상으로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영화적 연출로 환각을 이용한다면, 이를 통해 환각 초기에 느낄 수 있는 굉장한 혼란의 일부를 관객이 체험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공포와 두려움에서 오는 희열을 더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스릴러 장르의 요건을 훌륭하게 충족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장치를 이용해 환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예시로는 거울이 있었습니다. 거울은 주인공 미마의 제 2의 자아를 등장시키는 매개가 됩니다. 미마는 아이돌의 자아와 배우의 자아 사이에서 갈등을 겪습니다. 아이돌은 미마 자신의 꿈이자 회복하고 싶어하는 대상이고, 배우는 현재 미마가 처한 현실이며 극복하고 싶어하는 대상입니다. 이 부분이 참 재미있는데, 미마가 아이돌이 되고 싶지만 억지로 배우가 되는 평면적인 캐릭터로 짜여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대신 미마를 이중적인 욕구를 가진 인물로 받아들였는데, 그녀는 마음껏 노래를 부르며 재능을 뽐내는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연예계에서의 성공을 무조건적으로 추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사의 외압이 아이돌 생활을 그만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본인이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다수의 인격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심리 내면에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가 축적되어야 가능한데, 그녀의 좌절감이 성공 욕구와 뒤섞여 그 에너지의 근간이 되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작품 내에서 미마가 드라마 촬영 중에 강간에 해당하는 과격한 묘사를 찍게 되는 시퀸스가 있는데, 이 시점에서 미마의 아이돌로서 가지고 있던 자아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게 됩니다. 환각적인 묘사와는 별개로, 강간 장면 촬영 씬은 자아를 때려 부수는 폭력성에 걸맞게 강렬한 밴드 음악을 사용해 그 잔혹성을 한층 끌어올린 묘사가 소름이 돋았습니다. 중간에 촬영을 잠시 끊고 다른 테이크로 넘어가는 씬을 집어넣은 것은 미마의 절규가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어 더욱 이질감을 주면서 비참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씬의 마지막에서 빠른 교차편집으로 캐릭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그 시선이 바라보고 있을 조명을 교대로 보여주며, 이내 화면이 밝아지며 과거 아이돌로 있을 때의 화려했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화면 구성이 정말 빠르지만 동시에 정교했습니다.
강간 촬영 씬의 전후에서는 거울을 활용하여 아이돌로서의 자아를 현실세계에 간접적으로 등장시켜 미마의 내적 갈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촬영 전에는 망설임, 끝난 후에는 회한과 질책을 느끼는 주인공입니다. 거울의 이미지에서 자연스럽게 컴퓨터의 모니터 속으로 이동하는 미마의 외딴 자아는, 한층 더 현실세계로 다가오며 공포심을 자아냅니다. 자아의 갈등은 내적 갈등이지만 연출로서 드러내고 있는 것은 거친 외적 갈등입니다. 합일과 화해 이외에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는 내적 갈등과는 달리, 외면으로 표출된 자아들은 서로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환각에 서사적인 깊이를 더욱 부여하는 것은 모니터 속에 등장하는 홈페이지라는 소재입니다. 이 곳은 마치 미마 본인이 일기처럼 작성한 내용이 쓰여 있지만, 미마 자신은 이것을 알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마를 스토킹하는 우치다 마모루라는 인물은 이 홈페이지를 광적으로 읽고 신뢰하는 광인입니다. 스스로를 미마니아라고 자칭하는 이 인물은 분명 실존하는 인물로 묘사가 되어 있으나, 중반부 이후를 보게 되면 드라마 촬영장에서 미마의 시선에만 환상처럼 나타나는 등 환각의 일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를 감안할 때 미마니아는 실존하는 인물인 동시에 미마의 환각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해석해 보았습니다. 아이돌 미마의 광팬이었던 그를 페르소나로 하여 만들어진 이 환각은 미마가 아이돌에서 여배우로 전향한 후 그녀 자신에게 느낀 무력감과 실망감이 가장 극단적으로 투영되고 있는 자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후반부에는 미마의 매니저이자 과거 마찬가지로 아이돌이었던 루미가 이야기에 얽히며 그녀가 여러 사건의 배후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홈페이지에 여러가지의 말을 남겨 우치다 마모루와 같은 사람을 조종한 것도 루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쓰여 있던 말들을 보면 모든 것이 루미의 소행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스토커라면 대상의 행선지와 행동을 아는 것이 최대일 텐데, 홈페이지에는 심지어 미마 단 한 사람만 알고 있을 개인적인 생각까지 쓰여 있었기 때문인데요. 즉 루미 또한 실존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미마의 환각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작품 내에서 촬영되고 있는 또 하나의 드라마, 더블 바인드의 각본은 극중극의 구조를 구현하여 실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활발하게 상호작용합니다. 특히 중반부 이후부터는 두 극이 흡사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진행되기 때문에, 양 축의 긴장감이 서로 극대화되는 연출상의 이점을 가져옵니다. 실제 세계에서는 미마의 심적 마모와 환각 악화에 동반하여 살인 사건이 수 차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때 연속 살인 사건은 극중극에서도 충실히 재현되고 있으며 드라마 속 배우에 의해 극 외부의 살인사건의 흑막을 제시하는 독특한 구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토리가 이어질수록 미마의 서로 다른 자아의 갈등은 더욱 심화하여 미마의 본체 자아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으로, 이는 자아들의 존재감이 충분히 성장하여 서로 영향을 주는 단계에 도달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연출해서 보여주고 그 모든 방법이 인상깊었으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연출은 영화 후반에 미마가 루미의 차를 타고 돌아올 때 자동차에서 방으로의 장면 이동이 클로즈업 카메라의 우에서 좌 이동으로만 이루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장면 연결과 더불어, 중간의 기억이 마치 꿈을 꾼 것 처럼 없는 모습을 세심하게 연출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극중극에서는 주연 여배우가 "환상이 실제가 되는 일은 없어"라는 대사를 말합니다. 이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으로, 드라마 외부의 세계에서 미마가 환상의 실체화에 의해 겪는 심적 고난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수 년이 지난 후, 결말부에서 미마가 병원에 입원한 루미를 확인하러 들리는 씬을 보면 루미를 괴롭히던 아이돌을 추구하는 자아는 루미에게 완전히 정착한 듯한 모습입니다. 미마는 배우로서 크게 성공한 것으로 보이고요. 미마가 먼 발치에서 루미를 바라보기만 할 뿐 다시는 못 만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아이돌로 다시 돌아가려는 자아에는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직전의 시퀸스까지 다루었던 자아와 자아의 대립의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내가 진짜 미마야"라는 대사를 들을 때, 그리고 백미러 속 그녀의 웃는 표정을 볼 때 이는 아이돌의 자아의 버릇이었다는 것을 관객은 알아차립니다. 이를 통해, 배우로서의 성공과 명성을 추구하는 미마의 인격이 어떤 이유에선지 새롭게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다지도 비참한 과거와 트라우마를 가진 미마가 대배우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테죠. 후반부에서 미마와 루미가 둘 다 교통사고에 휘말렸을 때, 어부지리처럼 완전히 새로운 자아가 제어권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고, 기존의 자아가 합쳐져 가치관의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겠네요. 어떠한 결말이든, 주인공이 비록 사회적으로는 성공하고 명성도 얻었건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기 전의 본인의 자아는 결국 잃어버리게 된 결말이라 쓴 뒷맛을 남깁니다.
영화 내적 구성에서, 특별히 악당이라고 부를 만 한 캐릭터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꿈과 망상과 현실 틈에서 버둥거리는 소녀 미마를 각본가와 사진사는 성적으로 이용하였고, 기획사 사장 또한 그 계획에 일조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 미마에게 선택을 강요하였죠. 그러나 영화에서 이들이 그려지는 방식은 일반적인 선역과 악역의 색채 대조가 아닙니다. 미마, 혹은 루미에 의해 그들이 살해당한 것은 그들이 행한 일이 악했기 때문인 것이 아니요, 미마의 자아들이 휘두른 복수의 칼날에 죽었을 뿐입니다. 이처럼 단순한 권선징악적 스토리를 거부한 것도 영화의 완성도에 기여했다고 봅니다. 한편 이 영화가 폭력을 다루고 있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성적 착취 장면은 영화에서 활용할 수 있는 폭력적인 씬 가운데에서도 가장 강렬한 장르에 속하는 장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캡사이신이 양껏 들어간 요리를 미식 취급하지 아니하듯, 전 완성도 높은 영화라면 성적 착취 장면을 포함한 고수위의 폭력적인 장면은 정교하고 계획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예시를 들자면, 사진작가 무라노의 살해 씬이 그러하였어요. 사람의 살해 장면과 누드화보 촬영의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지속적으로 병치하고 있어 살인자의 분노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긴박한 배경음악의 사용으로 긴장감을 더했습니다. 덧붙이자면 빔프로젝터를 소품으로 선택한 것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빔프로젝터를 쏘아서 루미와 미마를 겹쳐서 연출할 수가 있더군요. 훌륭한 미장셴!
이렇게 훨씬 이전에 나온 작품을 마치 23아이덴티티처럼 해석해 보았습니다.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이었지만 몰입감을 극대화하여 영화 내내 유지한 수준급의 연출로 오히려 2시간 내내 시청한 듯 한 밀도 있는 감상이었습니다. 곤 사토시 감독의 다른 작품도 빨리 봐야겠습니다.